문화살롱

스즈메의 문단속 후기

akadora 2023. 3. 28. 11:53

애매하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고 간 터라 초반부는

“일본 친구들은 참 여고생 좋아해. 세계는 여고생이 구한다”
하며 보고 있었다. 색감 좋고 배경 좋고.

처음엔 단순히 악을 물리치는 판타지 만화로 보다가
중간부터 이질감을 느꼈다

음? 스즈메의 엄마가 부재인 이유와 부재가 시작된 날짜

미미즈와 다이진을 쫓아 올라가는 훗카이도, 도쿄 등 지명과 위치.

어? 이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사건이구나라고 중간부터 느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도 뭔지 알겠고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자들이
2023년인 현재에도 피난(?)생활을 하고있고
트라우마로 자살한 사람들도 많고 가족을 잃은 슬픔도 여전히 진행중인 것도 안다.

그래서 영화 말미에는 살짝 감상에 젖기도 했다.

일단은 아무래도 동일본대지진이 커다란 사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한국에서 300만명이 넘는 관객이 들어 흥행 1위인 건 좀 미스테리하다.

물론 신카이 마코토는 젊은 미야자키 하야오라고 할 정도로
훌륭한 그림체, 애니 특유의 환타지, 감성을 잘 녹여내어
일관성 있는 세계관을 보여주기 때문에 인정할만 하지만

작품성 자체로만 보면 훨씬 더 뛰어난 은유를 보여주었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200만명 관객이었건만

한국인에게는 공감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스즈메의 문단속이
300만을 넘다니.

물론 꼭 동일본 대지진을 모르고 보더라도
미미즈라는 대형 재난을 막아내는 소녀의 버디무비 형식 자체로도
나름의 흥미가 있긴 하지만

이게 오히려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된다.

1. 여고생의 일본 열도를 따라가는 활극(?)
2.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풋풋한 소타와의 첫사랑 감정
3. 일본에게는 트라우마로 현재진행형인 대지진의 상흔과 치유
4. 알게모르게 본인의 자리에서 묵묵히 이겨내는 정신
5. 남은 자들의 갈등과 화해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주인공 역인 문 되시겠다.

영화를 보면서 왠 문에서 재앙이 나온다는 표현을 하나 보다가
훗카이도, 도쿄로 올라가는 장면들을 보면 문이 아닌
<장소>들에 집중됨을 알 수 있다.

장소들의 공통점은 지금은 폐허라는 점, 그 폐허인 곳들이 어떤 재난을 겪었던 장소라는 것.

지금은 폐허지만 ~의 신이시여 선조시여 주문을 외울 때마다
그 곳에 매몰된 많은 추억과 사람들의 기억이 애도된다.


스즈메의 문단속의 남주.

왜 아동용의자일까 싶었는데 동일본 대지진때 쓰나미로 엄마를 잃은
스즈메에겐 유일한 연결고리이기도 하고
관객 입장에서는 잘생긴 남주보다는 더 친밀감 있고 귀엽게 느껴지긴 한다.

스즈메의 엄마가 만들어준 의자는 엄마가 떠난 뒤 다리가 3개만 남게되었고
이는 스즈메(재난 이후 남은 가족들)에겐 일종의 결핍이 표현되는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순대가 생각나는 일본 열도 아래의 지진을 일이키는 지각판을 형상화한 미미즈.

일본은 신의 나라라서 그런지 미미즈와 다이진, 사다이진 모두 신으로 표현된다.

지진을 일으키는 것도, 막아내는 것도 신들이고 그것이 신계의 싸움으로 묘사한 건
제법 판타지 했다.

내가 볼 때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최대 공로자.

고양이는 늘 옳다. 귀여운 하얀 고양이로 묘사된, 미미즈라는 재앙을 막아내는 한 축인 다이진.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마다 다이진의 “스~즈메?”하는 귀여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소타의 친구인 세리지와와 스즈메의 이모 사이에 로맨스가 주가 되는 후속작이 더 궁금할 정도로
둘의 캐릭터는 매력적이었는데 극 중에서는 큰 역할은 아니어서 좀 아쉬웠다.

스즈메의 이모는 극 중 대사들로 추측할 때 미혼인 20대 중반에 언니를 대지진으로 잃고
혼자 남은 4살인 스즈메를 본인의 삶을 포기하고 40살까지 양육해왔다.
원망도 하고 힘들었지만 끝내 가족을 포기하지 않은 캐릭터

세리지와는 진중한 분위기에서 가볍게 분위기 전환을 하는 감초역인데
그러면서 밉지않은, 사실은 누구보다 의리있고 정 있는 캐릭터.

중간중간 스즈메의 유년기 기억이 교차편집되며 플래시백 되는데
영화에서 종종 쓰는 기법이건만 이 영화에서는 되려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느낌이다.  

재미가 없었다기엔 재미있었고
재미있었다 하기엔 모호하다.

한 줄 요약하면 Life goes on, 어떠한 역경에도, 그럼에도 삶은 치유되고 계속된다인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자본주의와 인간의 탐욕에 대한 어마어마한 은유가 숨어있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로맨스를 표면에 내세운 반전주의가 있음에도

무엇이 중요하리.

관객인 우리에겐 전무후무한 캐릭터 가오나시가 남았고
평생 잊을 수 없는 히사이시 조의 OST와 하늘을 나는 소피가 있는 아름다운 색채의 장면이 남았다.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OST가 좋았고(특히 엔딩크레딧에 나오는 노래 좋더라)
다이진과 의자로 변한 소타는 귀엽다.

그거면 충분하다.